[대한민국 시즌Ⅱ를 준비하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지각변동 : 4차 산업혁명은 먼 나라 이야기인가?(3부)
통일비칼럼, 4차산업혁명 by 이상범, 이인애. 2017. 06. 06
▲ 구글 딥마인드 사의 ‘알파고’를 대신해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왼쪽)가 수상했다. (사진 출처 :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지난 2017년 1월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2017 한국이미지상’ 시상식이 열렸다. 3명이 상을 수상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수상자가 있었다. 바로 ‘알파고’였다. “이세돌 9단과의 세기의 대결로 전 세계의 이목을 한국에 집중시켜 한국을 널리 알리고 세계와 한국을 잇는 징검다리가 됐다”는 이유에서 수상자가 된 것이다.
알파고 쇼크 이후 한국에 몰아닥친 4차 산업의 광풍을 볼 때 어느 누구도 이 수상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적으로 4차 산업과 연관된 전문가들조차도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이 한국의 인공지능 연구를 10년 정도 앞당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알파고 쇼크 이후 1년을 훨씬 넘긴 시점에 선 지금, 과연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얼마나 4차 산업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왔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4차 산업은 머지않아 우리에게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그 4차 산업의 쓰나미는 우리 삶의 지형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쓰나미의 위험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우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 가운데, 한반도가 통일 시대를 맞이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큰 혼란으로 점철될 수 있다.
지난 10년 간 대내외적으로 환경이 급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란 단어에 매몰되어 소위 말하는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룬 고도성장이기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의 광풍을 선도해가고 있는 선진국들의 혁신과 변화를 기준으로 한국을 비교해 본다면, 한국은 과거 ‘산업전사’를 양성하며 대량생산을 통해 발전을 이루었던 방식의 제도와 관행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이처럼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 가운데서도 구시대의 굴레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4차 산업의 키워드, 공유와 연결
4차 산업의 주된 키워드는 ‘공유와 연결’이다. 언뜻 ‘공유와 연결’이라는 단어가 지닌 이미지로 인해 4차 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4차 산업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인 ‘독과점’이 핵심적으로 엄존하고 있기에 실상은 다른 어떤 산업시대보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4차 산업은 사람과 사람, 기계와 기계,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며, 그 연결능력을 통해 창조와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기존의 전통적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등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모델 기반의 ‘소유’개념을 거부하면서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대표적인 미국 기업의 예를 들어보겠다. 대부분의 자가운전자들이 하루 대부분 시간에 차를 주차해놓는 등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을 착안해 2009년 차량공유서비스 회사인 ‘우버(Uber)’가 설립되었다. 우버는 차량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공급자와 소비자들을 연결하여 이익을 창출한다. 현재 우버의 가치는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포드(Ford)와 지엠(GM)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되었다. 여기에 공유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발생되는 모든 개인 정보들을 데이터화하여 다른 서비스와의 연계함으로써 향후 새로운 비즈니스를 새로운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미국의 4차 산업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창업을 지원하고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와 기업가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을 통해 창업가들을 모은 후, 새로운 스타트 (기)업의 창업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4차 산업시대에 적합한 기업들을 육성하고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 스타트 업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기득권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정부 및 정치인들 또한 자신들과 이익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기업의 손을 들어 주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권력과 행정의 우위에 있는 정부가 스타트 업이 만든 기술을 도용해 서비스하여 오히려 창업 후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각계 각층의 기득권 세력으로 인해 발생되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4차 산업의 주된 키워드인 ‘공유와 연결’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거치면서 일괄적이고 획일적인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지친 3차 산업시대의 소비자들이 다양한 소비의 패턴을 요구하는 움직임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변화를 요구하되 암묵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일은 기업의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았다. 소비자들 역시 현란한 홍보와 광고에 훨씬 못 미치면서도 희망고문만 안겨주는 기업들에 실망하였다. 그때 불쑥 평범함을 박차고 나온 하나의 작은 기계가 전세계인들을 열광시키는 동시에 삶의 형태까지 바꿔 놓았다. 바로 애플의 아이폰이다. 3차 산업시대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적인 연결고리 중 하나인 아이폰, 이 스마트 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여느 4차 산업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잘 연결하는 과정에서 창의성과 창조성을 극대화시켜 ‘혁신’을 이루고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런데 만일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가 저개발국가나 혹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저개발국가보다는 한국에서의 상황이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개발국가의 경우는 기술적·산업적·인적 인프라가 거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는 기술적·산업적·인적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니 훨씬 유리해 보이지만, 결국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기존 가치와 이를 강요하는 가족, 교육, 사회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공유와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공유와 연결에 대한 실패와 성공의 경험 자체가 없다면 창조는 이루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쓸데없는, 나중에’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한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가정에서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쓸데없는 것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조차도 “너의 아이디어는 좋은데 나중에 여건이 되면 하자”이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평범한 우리들은 삶의 대부분을 아이디어가 ‘끊어짐’이 연속되고 소통과 ‘연결이 없는’ 공유 공간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 그림 1 (출처 : 구글)
<그림1>을 보면,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4차 산업을 선두에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의 ‘연결’을 통해 ‘창조’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한국의 입시위주 전수(傳受)교육방식에 기초한 주입식 사고방식은 그림 ①‘빅데이터 정보’에서 ②지식을 거쳐 ③경험까지의 과정만을 이끌어갈 뿐이다. 그래서 선진국 못지않은 기술적·산업적·인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④의 창조성을 지닌, 우리가 필요로 하고 바라는, ‘그 사람(The person)’을 만나기 힘든 것이다.
▲ 데미스 하사비스 (출처: 구글)
데미스 하사비스와 안철수
또 다른 ‘그 사람(The person)’ 사례로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뇌 속에 저장된 과거의 기억을 ‘스캔’을 통해 읽어낼 수 있음을 입증한 한 편의 학술 논문*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기억의 저장 과정을 포함한 ‘뇌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특히 해마와 관련하여 기억이 이뤄지는 뇌의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하여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기술인 ‘빅 데이터’의 처리 및 ‘인공지능’에 필수적인 알고리즘 개발을 이끌어 내었다.
*‘인간 해마상 융기세포에서 뉴런 앙상블의 디코딩’ (2009)
이 데미스 하사비스의 이력은 남다른 부분이 있다. 어려서 그는 촉망받는 체스 신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 체스 기사가 되지 않고 컴퓨터과학과 인지신경과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이후 2011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딥 마인드’를 영국에서 창업했다. 그의 인생의 주요 변화들 가운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로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연결되는 부분은 게임, 컴퓨터, 뇌 과학,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일 것이다. 앞서 <그림1>로 다시 적용하여 설명한다면, ①수많은 선택 가운데 ②할 수 있는 또는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지식을 쌓고 ③다양한 경험을 통해 ④마침내 창조와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그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 안철수. 의사로 경력을 쌓다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 당시 프로그램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프로그램 백신을 개발하고 컴퓨터 관련 회사를 창업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학 교수로서도 활발히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연혁을 보면, 인공지능의 아버지인 데미스 하사비스와 유사한 길을 갔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의 흔적을 보면 데미스 하사비스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자 하는데 먼저, 일반화시킬 수는 없는 부분이므로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히고자 한다. 일단, 확실히 전제하고 싶은 것은 이분의 사례는 단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사례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산업적·인적 인프라를 통해 역량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음에도, 소위 4차 산업의 ‘공유와 연결’ 시대를 이끌어갈 수도 있었을 그 사람조차도 결국 다른 길로 빠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이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을 배격하고 인간존중을 배제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신양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고, 이 속에서 ‘혁신’과 ‘창조’를 이루고자 하는 개인은 ‘기존 가치’ 안에서 ‘변화’의 동력을 잃고 매몰되고 마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인공지능과 로봇의 4차 산업시대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과거 IT산업과 제조업 시대의 경제 강국 중 하나였던 추억의 나라로만 남게 될 수도 있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흥미로운 사실은 4차 산업의 주된 키워드인 ‘공유와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과학 기술’이 아니라 되레 ‘인문학’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익숙하면서 한국에 유리하고 가능성 있게 표현한다면, ‘공유와 연결’이라는 키워드가 “홍익인간*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의 연결을 언급했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과 여건에서도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가치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홍익인간 사상은 우리나라 건국의 가치이니 이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술혁신에 있어서 이 가치는 ‘새롭지만 보편적인’이라는, 마치 ‘차갑지만 뜨거운’과 같은 이질적인 개념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창조성의 극대화를 이루게 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의미이다.
▲ 스티브 잡스 (출처 : 구글)
서구세계가 이처럼 이질적인 개념의 ‘공존’을 상상하고 함께 ‘협업’을 통해서 혁신적인 ‘탁월함’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사회 환경을 들 수 있다. 어려서부터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을 중요시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차츰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고, 어떠한 일들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통찰력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우는 학벌 중시의 풍조에 입시 위주 주입식 교육환경까지 더해 공교육의 불안정과 사교육의 난입을 야기하면서 다양성과 인성, 지혜를 배워야 할 시기에 편협성, 이기주의, 정답을 찾는 지식*만을 채우게 된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지혜와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기초학문을 중시하는 교육환경부터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을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와 통일시대에 대한 준비와 역량을 키워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중시 : 중요시하는 동시에 차별화된 교육 방식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식 : 지식은 배움으로 가능하지만, 지혜는 쌓은 지식의 연결 없이는 부족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4차 산업시대에는 고용구조의 변화로 인해 나타날 직업의 양극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과거 산업시대와 달리 고도의 숙련도를 요구하는 직업만 남고 나머지 일자리는 대부분 인공지능로봇으로 대체되고, 기업들은 노동자 고용 없는 투자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 부를 쌓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2016년 반도체 부문에 13조 원을 투자했으나 신규 채용은 650명에 그쳤다. 200억 원을 투자할 때 1명을 고용한 것이다. 전통적인 산업구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통일시대와 관련하여서도 한국의 자본, 기술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 자원과 결합하여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과 4차 산업의 ‘공유와 연결’이라는 키워드와 상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부합하지 않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남북한 사람들 모두가 공히 편중됨 없이 ‘공유와 연결’의 중심에 공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줄 수 없다. ‘공유와 연결’에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성을 통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남한 자본가와 북한 노동자라는 계층적 구분이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노동시장의 변화로 인한 남북한의 사회적 변화를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한 노동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닥칠 4차 산업시대의 극대화된 양극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유하고 연결될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이 가져다줄 혼란(Chaos)와 고립(Isolation) 속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우리는 4차 산업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통일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주로 생각하는 독일식 흡수통일과 통일의 경제적 편익과는 다른 맥락에서 ‘공유와 연결’시대에 적합한 통일방식을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통일시대를 살아갈 준비도, 역량도 갖추지 못하였다. 과거 어떤 산업시대보다 더 심한 승자독식구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에 갇혀 여전히 퍼스트 무버*(First Mover)보다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전략을 추구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기업, 정부, 학계 모두 마찬가지인지라*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이 더딘 것 같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사실은 눈 뜨면 전혀 딴 세상인 기하급수 기술(Exponential Technology)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의 선두주자인 미국은 이미 4차 산업시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 시티 건설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 또한 매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전 세계에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우리 또한 ‘한반도 통일’이라는 우리만의 기회를 바탕으로 ‘새롭고 보편적인’ 문화적 ‘공유와 연결’ 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매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